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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생 교구속으로-'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날 기념식' 취재 현장

남하린 | 2022/07/03 13:02

2022 유엔(UN)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치유된 마음으로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명: ‘향기로운 오후, 주님과 함께
방송시간: 0628(), 오후 204222
방송제작: 조미영 PD, 진행: 남하린 아나운서
주제: 생생, 교구속으로-‘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취재
 
진행자: 고문은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를 남길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고문생존자들의 영육간의 건강이 치유되길 바라며... 고문 없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저는 지금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는 데일리웨딩컨벤션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 광주트라우마센터의 김명권 센터장님 만나보겠습니다. 센터장님, 안녕하세요.
 
김명권 센터장: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오늘 이 행사는 광주트라우마센터와 교구의 광주인권평화재단과 공동으로 주관했는데요. 광주트라우마센터가 광주인권평화재단과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김명권 센터장: 오늘 광주트라우마센터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이 공동으로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을 하게 된 것은 광주트라우마센터가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치유·재활 사업을 하는 전문 기관이기도 하고, 우리 광주트라우마센터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은 전 세계 인류의 인권향상을 위한 관련 사업들도 주도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한 국가 공권력에 의해 80년 5월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되신 분들과 그 유가족,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여순항쟁 등으로 피해를 경험하신 피해 당사자와 그 유가족분들의 가슴 저 깊은 곳에 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늘 공동으로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오늘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은 어떤 취지로 기획되었나요?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의 공동 주관 기관인 광주트라우마센터 김명권 센터장의 모습
김명권 센터장: 오늘 실시하게 되는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은 1987년 유엔 총회에서 국제적으로 고문방지 협약이 발효된 날을 기념하여 매년 6월 26일을 지정하였는데요, 올해는 6월 26일이 일요일인 관계로 오늘 하게 된 것입니다. 또 관련하여 세계인권선언문에는 “그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나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고문과 부당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들은 육체적으로는 말할 나위가 없고, 정신적으로도 심한 고통으로 인해 온전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면서 또 온전한 자유 또한 향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해 가슴 깊이 오랜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고문 생존자와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을 위한 관심과 지원은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 덧붙여 이렇게 피해를 경험하신 분들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편견으로 정말 마음 아파하시는 분들(피해자들) 또한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에 대한 올바른 대우와 함께 존경과 감사를 담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기념행사를 개최하게 되었고, 오늘 용기를 내어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진행자: , 오늘 참석하시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어떤 분들이고, 몇 분이 참석하시나요?
 
김명권 센터장: 오늘 이 기념행사에 참석해 주신 분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해를 입은 당사자분들과 그 유가족, 그리고 호남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관계자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관련 유가족, 여순항쟁 관련 유가족, 삼청교육대 피해자분 등 약 아흔 여명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진행자: , 주관기관으로서 한말씀 해 주신다면요?
 
김명권 센터장: 오늘 이 기념식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옥현진 시몬 총대리 주교님께서 많은 관심과 배려로 참석하신 분들을 위한 성대한 오찬과 함께(오찬을 마련해 주셨고) 다른 일로도 정말 바쁘실 텐데 직접 이 행사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앞으로도 부당한 국가 공권력의 행사가 없도록 예방하는 일을 물론, 전 세계 인류의 인권증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고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다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또한 이 지구상에서 잔혹한 고문이 영원히 없어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답니다(간절히 바랍니다). 거듭, 이 기념식에 용기를 내어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이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진행자: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명권 센터장: 고맙습니다.
 
진행자: 광주트라우마센터의 김은애 선생님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 행사를 담당한 광주트라우마센터 김은애 정신간호사의 모습
김은애 정신간호사: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선생님, 행사를 준비하시면서 힘들었던 부분, 또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마주하시면서 느끼셨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은애 정신간호사: 오늘 기념식이 국가폭력 피해자 분들을 모시고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정말 뜻깊은 자리가 아닐 수 없는데요. 더 많은 분들을 모시고 기념식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5.18 민주화운동만 해도 벌써 4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많은 피해자 분들이 고령의 나이가 되시고 한 해 한 해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센터에 나오거나 활동들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리고)지금까지도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기관을 찾지 못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저희가 더 열심히 이런 피해자분들을 찾아다니며 하루 빨리 치유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진행자: , 이 광주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이 꼭 치유를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이번 기념식은 작년과 달리 조금 더 큰 장소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김은애 정신간호사: 지난 2020년,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이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상당히 제한적인 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몸과 마음의 피로감이 상당한데요. 광주인권평화재단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이렇게 큰 행사를 열 수 있게 되어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선생님, 오늘 기념식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김은애 정신간호사: 매년 6월 26일은 유엔(UN)이 인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입니다. 고문과 국가폭력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의 삶을 알리고 위로하는 영상 시청을 시작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피해자분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는 시간이 상당히 의미가 있고요. 오늘 기념식을 위해 천구교 광주대교구 옥현진 시몬 총대리주교님과 광주시청 평화기반조성과 김정민 과장님의 축사가 함께 이어지면서 광주트라우마센터 김명권 센터장님의 인사말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지친 마음을 노래로 위로해주는 ‘크로스포맨’의 기념공연 후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을 기념하는 선언문 낭독으로 진행이 됩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이 행사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김은애 정신간호사: 고문은 인간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문 이후에도 피해자분들은 여전히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고문과 국가폭력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더 이상 이러한 국가폭력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진실을 알리고 피해자분들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선생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은애 정신간호사: 네, 고맙습니다.
 
진행자: 곧 유엔 고문생존자지원의날 기념식이 시작됩니다.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의 사회를 맡은 광주트라우마센터 김정주 심리상담사의 모습
사회자: 지금부터 2022년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날 기념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광주인권평화재단을 대표해서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옥현진 시몬 총대리주교님 참석하셨습니다.
 
(박수)
 
샌드아트로 꾸며진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날 기념식 기념 영상
사회자: 다음은 유엔고문생존자지원의 날 기념영상을 먼저 시청하겠습니다.
 
(영상)
 
사회자: 먼저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옥현진 시몬 총대리주교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천주교광주대교구 옥현진 총대리주교는 "여러분의 현존과 여러분의 증언이 진실을, 또 사회를 진일보시키는 데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현진 총대리주교: 짤막한 글귀 말씀드리고,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 꽃 한 송이를 청했더니, 꽃밭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나무 한 그루를 청했더니, 이렇게 숲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느님께 강을 청하였더니 커다란 바다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천사를 청하였더니 바로 사랑 가득한 여러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현존과 여러분의 증언이 진실을, 또 사회를 진일보시키는 데 큰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에서 열정적인 공연으로 참석자들을 감동시킨 팝페라그룹 크로스포맨의 공연 모습
사회자: 다음은 오늘 공연을 기념해서 기념 공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크로스포맨의 팝페라 공연입니다.
 
(노래 ‘그날이 오면’)
 
사회자: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선언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광주트라우마 센터의 김영지 선생과 트라우마센터에서 국제 인턴을 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응웬휘또안이 낭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에서 고문 없는 세상을 희망하며 광주트라우마센터의 김영지 팀원과 국제 인턴 응웬휘또안(베트남)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영지: 우리의 비전은 고문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고문으로 고통 받는 개인과 공동체의 치유와 재활, 정의 구현 그리고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것은 고문 생존자들에게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진행자: 오늘 이 행사에 자리하신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을 만나보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고() 김영철 씨 가족인 김순자 선생님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순자 여사: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김영철 씨의 상황에 대해 잠깐 말씀 나눠주시고, 그러한 상황을 겪은 후 김영철 씨의 생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고(故) 김영철(도청수습위원회 기획실장 및 '들불야학' 설립자) 민주열사 아내이자 오월 어머니집 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순자 여사
김순자(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고(故) 김영철 씨 아내) 여사: 저는 트라우마센터 회원 김순자입니다. 그리고 자진하여 결성되고 자진하여 투입된 도청수습위원회 기획실장 고(故) 김영철의 아내입니다. 1980년 5.18 당시 남편의 나이는 32세, 저는 25세였습니다. 그리고 슬하에는 1남 2녀가 있는데, 당시 셋째는 임신 8개월 중이었습니다. 1976년 남편과 결혼해 곧바로 개발지역인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지도자로 입주하게 됩니다. 이때 남편의 친구를 통해 윤상원 외 몇 명을 만나게 되었고, 야간학교 설립을 계획 중이던 남편은 그들과 뜻이 같음을 확인하고 ‘들불야간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들불야학'의 교장이자 강학을 담당했던 민주열사 고(故) 김영철이 1979년 '들불야학'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그리하여 남편은 ‘들불야간학교(들불야학)’ 교장 및 특별 강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윤상원, 박관현, 박용준 등 많은 삼촌들(민주열사들)을 만나게 되었고 가족으로 지냈죠. 그러는 과정에 남편은 구 YWCA 신협에 상무로 취직이 되면서 고아였던 박용준을 만나서 의형제를 맺고 항시 출퇴근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던 중 5.18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그날은 일요일이었어요. 그래서 남편은 광천교회의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며 방송(비상계엄확대선포 김대중 씨가 구속됐다는)을 듣던 중 이러고(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라면서 뛰어나갔어요. 그리고 5월 19일 박용준 삼촌(열사)과 함께 전일빌딩 뒤에 있는 구 YWCA 신협에 출근을 했어요. 이날 공수부대원들이 쳐들어와서 2층으로 올라가 문병란 선생님, 장주석 선생님, 민주인사들이 운영하는 양서조합(양서협동조합)에 있는 황일봉 군을 끌고 내려와서 현관에서 구타를 했어요. 옆에 있는 무등고시학원생들이 2층에서 내려다보고 “그러지마...!” 하고 야유를 보냈다는 이유로 그들(공수부대원들)은 무등고시학원으로 올라가 학생들을 부위를 가리지 않고 구타해서 길가에 엎드려 놓고 발로 자근자근 밟아서 트럭에 싣고 가 버렸어요. 이것을 지켜본 남편과 YWCA 신협 직원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도청을 오가면서 본격적으로 항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0년 5.18 항쟁 당시 도청항쟁지도부 시민·학생 투쟁위원회 기획실장으로 차량과 유류통제, 도청 출입 통제, 무기 및 보급품의 관리 등을 총괄하고 검은 리본을 만들어서 시민들 가슴에 달아주었으며, 도청 태극기에 검은 리본을 직접 달며 조의를 표하였고, 시민장을 준비했습니다. 또 궐기대회 때 경과보고를 했고,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이라는 연설문을 작성했습니다. 연설문 내용의 요지는 우리 비무장 시민은 폭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본격적으로 항쟁에 참여하면서 도청 안에서 윤상원과 함께 마지막 항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상원이(윤상원 열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과 함께했고, 계엄군이 소지하고 있는 M16 소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형님, 나 틀린 것 같소.” 하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때, 창문의 커튼에 총이 맞아 불이 붙었고, 상원이 몸에 떨어져 (윤상원 열사의 몸에)화상을 입었는데, (남편은)저들(공수부대원들)이 분신자살이라고 뒤집어 씌운다고 흥분을 하면서 내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윤상원 부모님께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저는 윤상원(민주열사) 부모님께 윤상원 삼촌(민주열사)의 영혼결혼식 중매도 했습니다. 그런 후, 남편은 본인 얘기를 했어요. 남편은 도청 안 출입국, 도청 안 사무실 입구 구석지에 숨었는데, 계엄군 중사가 남편을 발견하고 M16소총으로 50~80cm 거리에서 일곱 발을 쏘아대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총알이)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코를 스치고 어깨를 스쳐서 뒤에 있는 이양현 씨의 어깨에 맞았다고 했고, (자신의)사타구니 밑 허벅지에도 총알이 스쳐 흉터가 생겼다며 내게 보여줬어요. 총격이 있고난 뒤에 남편은 손을 들고 항복하고 나왔는데, 그때 계엄군 중사가 남편에게 “야, 너 안 죽었어?”라고 말을 했다는 거예요. 참 기가 막힐 노릇이죠. 그 후, 남편은 도청 민원실 앞의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고 했어요. 나무를 타고 내려올 때 외신기자가 있어서 자신의 피 묻은 모습을 알려달라고 고개를 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이때도 계엄군들은 남편을 구타했다고 했어요. 그런 와중에 남편은 또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서 간첩으로 몰려서 개미고문, 물고문 등 갖은 고문을 당했고, 고문과 강압적인 추궁에 거짓자백을 할까봐 자살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헌병들은 (남편은)군홧발로 짓밟고 고문과 몽둥이질을 계속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다쳤지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상처에다 테이프만 붙여서 다시 영창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자리가(상처난 자리가) 곪아 터져서 소독약 바르면서 치료했다고 하대요. 그리고 교도소로 옮겨져서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고(수감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 12월 25일 출감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함께 새벽 4시쯤 마중을 나가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4시도 되기 전)새벽 2시 30분경에 (그들은 남편을)광천동 파출소 앞에다 내려주고 가 버렸던 것이에요. 그때 남편의 모습은 너무 비참했어요. 소품은 하나도 챙기지 않고 다 떨어진 담요에다 책 몇 권과 헌 내의 두벌을 감아서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완전히 거지 중에 상거지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단순히 정신병만을 가지고 있다가 나온 게 아니라 그 지독했던 고문으로 인해 뇌에 깊은 상처를 입어 고통이었어요(고통을 당했어요). 남편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미쳐서 발광하면서 뛰어다녔어요. 심지어는 맨발과 알몸으로 광주 시내를 활보하면서 돌아다녔고, 나주에 가서도 길 가운데 무릎 꿇고 앉아서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1998년 5월 말경 영광신하기독병원에서 찍은 도청수습위원회 기획실장이자 '들불야학'의 교장이었던 민주열사 고(故) 김영철의 살아생전 마지막 사진
그래서 결국에는 뇌수술을 받고 인공호수를 착용하고 18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근데... 우리 가족의 삶은 어떠했겠어요?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랑하는 남편이 건강했던 모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것이었고요.) (그런)내 심정이야말로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누구든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저는 5.18 희생자들이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애국심과 사랑과 희생정신을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 선량하고 한없이 베풀기만 했던 제 남편... 지금도 생각나고... 보고 싶고... 너무 불쌍해요. 한 식구로 살았던 들불야학 삼촌들(민주열사들)이 지금도 보고 싶고 생각나고 내 마음속에 다 있어요(아직도 자리하고 있어요). 전두환 반란정권은 우리 남편이 내란수괴로 간첩의 죄가 있으므로(있다고 뒤집어 씌워) 담당 형사를 파견시켜 날마다 우리를 감시했고, 우리집으로 날마다 출근해서 같이 눌러 살았습니다. 남편이 행방불명돼서 서울 음암동 정신병원까지 찾으러 가는데도 담당 형사가 찾아왔어요. 우리 가족은 평생 ‘빨갱이’라는 그 꼬리표를 달고, ‘간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가족들이 평생 족쇄를 달고 살아왔습니다. 그 고통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는 게 아니라 지옥 속에서 살았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트라우마’라는 것은 내 속에 보이지 않고 잠재해 있는 것이라고요. ‘트라우마’는 제 경험으로 봤을 때... (나를)죽이는 것이에요. 죽이는 것. 나를 날마다 죽여가면서 살고 있는 것이에요. 나 역시도 살고 싶은 생각보다 죽고 싶은 생각을 더 많이 하며 살았거든요. 이 ‘트라우마’라는 것은 1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대, 3대 후손까지 계속 끈처럼 이어져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이 큰 고통이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트라우마’라고 생각해요.
 
진행자: 그렇군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오셨는데요. 김순자 선생님,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국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김순자(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고(故) 김영철 씨 아내) 여사: (국가에)바라는 게 있다면, 가해자의 입장에서... 정말 책임지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전두환 반란군부 세력들은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사과하십시오. 모든 사람들(전두환 반란군부 세력)을 대표해서 본인들이 사과하고 우리들한테 나머지 인생을 잘 살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라도 잘 살 수 있도록 복지혜택도 마련해주고, 우리가 정신적 트라우마를 이기고 살 수 있도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어요.
 
진행자: , 책임자 처벌 그리고 피해자분들과 피해자 가족분들에 대한 복지혜택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그런 부분들이 조속히 해결되고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오늘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순자(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고(故) 김영철 씨 아내) 여사: 우리가 마음 놓고 말 한자리(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흑암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잖아요. 그것도 몇 년도 아니고, 4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암흑 같은 세월 속에서 가슴에 맺혀 있던 한을 트라우마센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표출하고 말할 수 있고, 치유가 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서(치유받을 수 있어서) 정말 깊은 뜻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행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피해자들)한테는요. (이런 행사를 준비해 주심에)깊은 감명을 받고 감사함으로 이 자리 참석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국가차원에서 우리 트라우마센터가 이전보다 더 경각심을 갖고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서 퍼포먼스를 만들어 행동으로 보여주는(보여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고요)... 국가와 경쟁해서(협의해서) 이겨내고(권리를 인정 받고) 우리 피해자들을 위한 어떤 대책들이 세워지고, 하루 빨리 우리들이 필요한 공간들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치유의 길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오늘 이 자리가 피해자분들, 그리고 피해자 가족분들한테 치유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순자(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고(故) 김영철 씨 아내) 여사: 고맙습니다.
 
진행자: 5.18민주화운동 부상자이신 김후식 선생님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5.18민주화운동 부상자이신 김후식 선생님의 모습
김후식(5.18민주화운동 부상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선생님의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그 상황을 겪은 후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후식(5.18민주화운동 부상자): 네, 그때는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었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사람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개, 돼지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화가 나게 됐고, 흥분하게 됐고, 그래서 전부 거리를 뛰쳐나오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고 집단 발포를 했습니다. 발포하는 순간에 저는 총을 맞았죠. 그래서 쓰러져서 거의 2년 동안을 병원에서 지냈어요. 그러고 나서 부상자모임을 함께 해 오면서 지금까지 42년을 그 피해에 대한 진실 규명을 하기 위해서... 또 우리가 (직접)알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의(피해자분들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고, 또 피해보상이 제대로 안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내가 마흔 살이었어요. 우리 나이로. 만으로 39세였는데... 어린 애가 셋이나 있었고요. 아내도 있고... 네 명의 가족의 가장이었는데, 제가 몸을 다쳐서 활동을 못하다 보니까 우리 가정은 너무나 피폐해졌고, 그런 세월을 42년 동안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장애가 있고, 어려움을 겪다 보면 온 식구가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가 되고... 온 가족이 피해를 입는 거거든요. 계속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끌려가고... 97년까지도 끌려다니고 그랬었나요?(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내 뒤에는 항상 다섯 명의 감시원이 따라다녔습니다. 97년까지를 그런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얘기는 누구한테도 할 수 없는 얘깁니다. 또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저는 실제로 겪어왔었는데요... 그래도 그러한 상황을 꿋꿋이 이겨내 준 가족들의 도움이 (제가)이렇게 살 수 있고, (트라우마를)이겨낼 수 있는 큰 도움(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선생님 많이 힘드셨을 텐데요.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국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김후식(5.18민주화운동 부상자):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죠. 역사적으로 이런 날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유엔(UN)에서도 이런 날을 만들어서 오늘 기념식도 하고 그렇잖습니까. 정말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 국가에 의해서... 공권력에 의해서... 피해를 입는 그런 상황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진행자: , 공권력에 의해 피해자가 발생하는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습니다. 오늘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후식(5.18민주화운동 부상자): 네, 우리 동료들... 부상자들... 또 구속자들, 5월 동기들의 아픔을 같이 몸으로 느끼고 이런 날 같이 와서 서로 위로하고... 그렇게 참석했습니다. 와서 보니까 참 오길 잘했다... 이런 날을 가짐으로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해야) 국가에서도 (피해자들에게)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트라우마센터가 12년에 광주 시범 사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국가기관으로 발돋움했고, 많이 발전했습니다. 앞으로 트라우마센터가 더욱 더 발전을 해서 많은 고문피해자들... 공권력에 의해 피해 입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됐으면 좋겠다... 또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치료해 주는 그런 기관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고, 또 (이 자리를 빌려 행사를 마련해 주신)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행자: , 오늘 이 행사를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이 치유의 길로 나아가길 희망하고 또 소망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후식(5.18민주화운동 부상자): 고맙습니다.

진행자: 광주 인권평화재단의 임수경 수녀님 만나보겠습니다. 수녀님, 안녕하세요.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의 공동 주관 기관인 광주인권평화재단 임수경 수녀의 모습
임수경 수녀: 안녕하세요.
 
진행자: 수녀님 오늘 이 행사의 공동주관 기관으로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임수경 수녀: 네, 이 행사의 본래 취지가 교구장님, 김희중 대주교님의 의지가 크셨어요. 고문생존자분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리면서 그분들에게 감사와 보은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셨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 사실 행사를 약소하게 치르게 돼서 거의 3년 만에 오찬을 함께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오늘)이렇게 많은 어르신들... 건강하게 계시는 모습 뵈면서 식사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뜻깊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진행자: , 고통 받고 있는 국가폭력 피해자들... 하지만 치유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이분들과 교구민들 그리고 청취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수경 수녀: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께는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이 없고요. 감사드린다는 말씀 밖에는요. 다만 고문생존자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들의 희생 덕분에 과거형처럼 되어 버렸지만, 사실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함께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정말 많은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그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어떤 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런 관심 자체가 그분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또 변화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것을(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분들의 관심, 작은 지지와 연대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 저희 광주인권평화재단도 그런 연대의 길 위에서 늘 함께하겠습니다.
 
진행자: 수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임수경 수녀: 고맙습니다.
 
2022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식에서 국가폭력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진행된 국민의례의 태극기 모습과 양쪽에 고문생존자들의 이름 일부.
진행자: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 피해를 입은 고문생존자분들께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가슴 찢기는 고통과 분노, 오열의 한스러움과 고귀한 핏자국을 남기며 고난과 역경의 삶을 견뎌오신 이분들의 앞날에 꽃길만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유엔(UN) 고문생존자 지원의날 기념식이 진행된 데일리웨딩컨벤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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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6-29 06:41:38     최종수정일 : 2022-07-03 13: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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